‘넌 프리랜서라서 좋겠다’는 실제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빈도수로 보면 ‘넌 좋아하는 일 해서 좋겠다’랑 비슷하고, 둘을 같이 들을 때도 많아요. 틀린 말이냐 하면 당연히 아닙니다. 실제로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프리랜서의 일하는 방식이 개인적으로 잘 맞는 편이기도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심지어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해가 지날수록 커지고 있다는 게 스스로도 좀 놀라워요. 살면서 유일하게 질리지 않는 게 음악이고, 창작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걸 곁에 두고 일할 수 있는 삶이라뇨. 가끔 제 인생 대부분의 행운은 전부 지금 하는 일을 했고, 하고, 할 수 있는데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평소에 운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콩 심은 데 콩, 팥 심은 데 팥만 열심히 나는 걸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은 추측일지도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사실 저는 내심 다음 사람이 한 번 더 똑 같은 질문을 해주기만을 기다립니다. 프리랜서가 정말 그렇게 좋냐고요. 기다렸던 질문입니다. 고맙습니다. 마시던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질문한 사람에게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들을 자신이 있냐는 은근한 눈빛을 쏘고 싶네요. 평생 프리랜서로만 살아온 저는 이 테마에 대해서만은 100꼭지짜리 글을 쓰래도 쓸 자신이 있거든요. 우선 그 첫 챕터는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여행지에서 잠깐 잠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부리나케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지금 모습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주도 픽 서비스, (조금 늦게) 시작합니다!
비비(BIBI) [EVE: ROMANCE] (2025.05.14)
지난해 ‘밤양갱’ 이후, 비비를 바라보는 시선은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가수로 성공한 이력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의 비비나 나아가 비비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죠. [EVE: ROMANCE]는 그 기대를 다시 한 번 정면으로 배반합니다. 이건 ‘밤양갱’ 비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비누’(2019) 즈음부터 그를 눈 여겨 봐온 사람에게 훨씬 친숙한 앨범이에요. 이번에는 ‘사랑’을, 다음에는 ‘나’를 이야기할 거라며 새 앨범 소개에 바로 다음 앨범을 예고하는 패기도 멋집니다. ‘몸’같은 노래를 한국에서 누가 또 부를 수 있을까요. 그것도 ‘밤양갱’ 이후에요.
정세운의 이름 앞에는 ‘싱어송라이돌’이라는 수식이 늘 붙었습니다. 조금 어색하게 어깨를 나란히 한 두 단어의 접합은 그가 싱어송라이터와 아이돌 양쪽 모두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뜻인 동시에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죠. 둥지를 바꾼 정세운의 아이덴티티는 확실히 싱어송라이터 쪽을 가리킵니다. [Brut]는 그 뚜렷한 증거고요. 그렇다고 갑자기 없던 걸 있는 척 하냐면 그건 또 아닙니다. 앨범 커버부터 180도 표정을 바꾼 앨범은 ‘나의 바다’나 ‘온도차’같은 노래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분명 반가워할 만한 노래들이 담겨 있어요.
24인조 걸 그룹 트리플에스는 일명 ‘케이팝 고관여층’에게 흥미로운 주제를 여러 가지 던지는 팀입니다. 크게 둘로 나누자면 ‘서울과 소녀’라는 뾰족한 테마 그리고 이지리스닝을 쫓다 잃어버린 ‘세련된 케이팝’의 어떤 지점이죠. 앨범 [ASSEMBLE25]는 전자로 큰 호응을 얻었던 [ASSEMBLE24](2024)에 비해 후자의 매력이 더 크게 다가오는 앨범입니다. 그만큼 ‘서울과 소녀’로 보여줬던 특유의 응집력이 조금 약해졌다는 뜻도 될 테고요. 하지만 케이팝의 정수 같은 ‘추리소설’, 케이팝적으로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Diablo’같은 곡을 들려줄 수 있는 팀이 누가 있나를 생각해보면, 이들의 존재가 새삼 귀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