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궁금하지 않은 tmi라고 생각합니다만, 음악평론가에게 5월의 꽃말은 ‘심사’입니다. 아마 평론가 외에도 음악 업계에 일하는 분야별 전문가 모두에 해당하는 말일 거예요. 칼럼도 쓰고, 유튜브도 찍고, 라디오도 나가고, 음악 프로그램 자문도 하고, 행사도 진행하는 – 정말 음악 좋아하고 시키는 건 다하는 제가 하는 일 가운데 심사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새 앨범을 준비하는, 단독 공연을 열고 싶은, 해외 진출에 도전하는, 신인 지원이 필요한 수백, 수천 팀을 보는 게 저의 5월 일과입니다. 올해는 '튠업', '뮤즈온', 'AoB' 등의 심사를 하고 있어요. 전 심사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막중한 책임감과 동시에 아무리 레이더를 세워도 다 감지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음악가 목록을 업데이트할 신나는 기회거든요. 혹시 왜 심사가 5월에 몰려있는지 궁금한 분도 계실까요? 사실 거기엔 꽤 명확한 이유가 있는데요. 주최가 어디건, 대부분 1/4분기는 예산 분배를 하고, 2/4분기에는 심사 및 선정, 3/4분기에 실행한 뒤 4/4분기에는 결과 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알면 쉽지만 모르면 영영 모를 이런저런 지원사업 팁을 포함한 음악가 대상 워크숍을 올여름 대구에서 하나 열 것 같습니다. 일정과 커리큘럼이 정해지면 소식 전할게요. 음악가분들 조금만 기다려😎
오늘 소개하는 3 Picks 가운데에는 그런 심사 덕분에 살짝 늦게 발견한 음악가와 앨범이 하나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떤 숨은 보석일지 기대해 주세요!
paulkyte(폴카이트) [Full Price Phobia] (2025.05.07)
첫 곡 ‘Even if I’m dying’의 전주를 듣는 순간 ‘이건 끝난 게임이다.’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운 기분을 꽉 눌러 담은 애틋한 기타 연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란 좀처럼 쉽지 않죠. 어떤 순간에도 미련 없다는 듯 산뜻하게 노래하는 DAY6 영케이 목소리와의 조화도 좋습니다. EP로는 최소라고 할 수 있는 4곡을 담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곡마다 밀도가 높고, 단독 싱글로의 힘도 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매트하게 빠진 마지막 곡 ‘무조건 사랑해 줘’에 자꾸 손이 가네요.
지난해 2월 발표한 정규 앨범 [때깔 (Killin' It)]부터 폼이 올라왔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확실히 답을 찾은 것 같은 앨범이 나왔네요. FNC엔터테인먼트의 6인조 보이그룹 P1Harmony의 [DUH!]입니다. 벌써 여덟 번째 미니 앨범입니다. 데뷔한 지 6년 차인데도 이런 설명을 굳이 덧붙여야 할 정도로 한동안 데뷔쯤의 기세 이상으로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는데요, 이제 확실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힙합을 기반으로 짬과 훅 모두를 건진 타이틀 곡 ‘DUH!’에서 하이퍼 팝을 표방한 마지막 곡 ‘Work’까지 거를 타선이 없습니다.
발매 날짜 보이시나요? 바로 이 앨범이 제가 늦게 바구니에 담은 이 주의 앨범, 래퍼 루시갱의 정규 2집 [Home Sweet Home]입니다. 최근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 정도 규모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여성 래퍼를 찾기는 은근히 힘들죠. 심지어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앨범이라면 더더욱요. 붐뱁이나 트랩처럼 최근 자주 언급되는 힙합 장르도 쌔끈하게 빠졌고, 저 같은 흑인음악 OB가 좋아할 만한 90년대풍 사운드도 반갑습니다. '쿵쿵'. '공공'처럼 특유의 리듬감을 살린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절로 몸이 움직이네요. 팝적 감각까지 돋보이는 ‘쿵쿵쿵’ MV한 번 보고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