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여름과 관념적 여름이 격렬하게 교차한 지난주였습니다. 다들 살아 계시죠?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전 지금까지 평생 제가 여름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지난주를 겪어 보니 아니더라고요. 저는 높은 습도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지, 햇빛과 건조한 바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코첼라 사막에서 40도 넘는 땡볕이 정수리에 내리꽂혀도 수분만 적절히 공급해 주면 살 만했던 것 같아요. (추억 보정1)
지난 주말 노들섬에 전진희 씨 공연을 보러 갔다가 완벽한 여름 풍경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작렬하는 여름 햇살이 슬쩍 꼬리를 늘어뜨리는 늦은 오후, 노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강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까지 사랑스러워 보이는 풍경이었어요. 순간적으로 아, 망했구나 싶었습니다. 혹시 그거 아시나요. 한여름 페스티벌에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도록 무더위 폭격을 맨몸으로 맞다가, 해 질 무렵 갑자기 불어온 한 줄기 바람과 노래 하나에 그만 그 모든 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박제되고 마는 순간이요. (추억 보정2) 아무래도 이번 여름 저는 틀린 것 같습니다. 완벽했던 주말의 관념적 풍경을 안고, 여름 내내 여름을 여름인 채로 괴로워하고 그리워하며 지내게 될 것 같아요.
주말에 만난 건 다만 완벽한 여름 풍경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진희 씨 공연에 등장한 이영훈 씨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마음이 뭉클해져 버렸거든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이 곡은 아마 저의 ‘시절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이런 노래를 사랑했었지, 이 노래가 내 인생에 있었지, 오랜만에 깊이 좋아하던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이 노래를 들었어요. 이영훈의 ‘돌아가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번 주, 이런 노래 한 곡이 꼭 찾아와 주길 바라며!
실리카겔 [南宮FEFERE] (2025.07.10)
사람들의 주목 한 번 끄는 것도 어렵지만, 그 주목을 계속 이어가는 건 더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한국의 밴드씬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해도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할 밴드 실리카겔이 1년 7개월 만에 발표하는 신곡 ‘南宮FEFERE(남궁페페레)’는 그 기대에 멋지게 펀치를 날리는 싱글입니다. 이들의 활약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는 입장에서 솔직히 재생 전 아무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확실히 걱정했고, 조금 더 확실히 안심했습니다. 계속해서 ‘나아가는’ 이들의 길에 힘을 나눠준 재패니즈 브랙퍼스트(Japanese Breakfast)도, ‘우리가 찾아낸 동굴’을 부르는 여전한 메시지도 적절했고, 뭉클했습니다. 그보다 ‘microtribes awaken now’라고 적힌 티셔츠, 발매해주실 거죠?
솔직히 요즘 sokodomo 음악, 너무 재미있게 하지 않나요? 지난해 상반기 역시 신나게 들었던 [SWEET HE♡RT] 이후 이번 앨범 [DREAM BOY]도 기가 막힙니다. 국내 힙합씬의 주류가 소화하기 어려운 랩 컬러와 음악 스타일을 어떻게 자기식으로 펼쳐 나갈 수 있을지 확실히 방향을 잡은 느낌이에요. 지난 앨범에 이어 이윤정, 기리보이, 로꼬(Loco) 등 많은 동료가 힘을 보태줬는데요, 그 화려한 라인업이 sokodomo가 만드는 오색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휘말려 들어가는 풍경을 보는 게 무척 기분 좋습니다. 이런저런 설명보다 크러쉬(Crush)와 함께한 첫 곡 ‘순식간에’를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 ‘앗쌀합니다’.
좋은 노래는 보통 첫 소절로 사람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습니다. 음성녹음의 ‘Drifter’는 ‘순간의 따스함도’라는 첫 소절로 적어도 제 마음은 순식간에 훔쳐 갔습니다. 같은 취향으로 쉽게 뭉치게 되었다는 이 여성 듀오는 보컬 백서현, 건반 정다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싱글 위주로 활동해 오고 있는데요. 조금씩 다른 결을 가진 곡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90년대풍 가요의 온기가 늘 기분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Drifter’는 그 심증의 정점에 놓인 곡인데요. ‘더 클래식’의 ‘동경소녀’나 ‘롤러코스터’의 ‘습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분명 좋아할 거라고 자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