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요즘 여름 과일처럼 새 앨범들이 쏟아진다’는 말을 했는데요, 정말 그런 기분입니다. 겨울-봄-초여름을 지나오면서 조금씩 커진 열매들이 무게를 못 이기고 귓가로 툭툭 떨어지고 있어요. 일주일에 3장이라는 숫자 제한이 아쉬워지는 때죠. 특히 지난주에는 한국에서는 드문 라이브 앨범 발매가 눈에 띄었습니다. 밴드 고고학 (Gogohawk)의 [LISTEN & DISCOVER 고고학 LIVE]와 장기하의 [하기장기하]가 주인공인데요. 각각 같은 이름으로 올해 진행된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입니다. 우선 고고학의 경우, 제가 최근 농담처럼 ‘연주 차력 밴드’라고 말하고 다니는, 흡사한 연차를 가진 밴드 가운데 연주력으로는 어디 비할 데가 없는 밴드거든요. 그리고 그것으로 ‘어떤 경지’에 도달한 밴드기도 하고요. (제가 ‘기술’에 은근히 짠 사람이라는 걸 아는 분들은 아마 이게 얼마나 큰 칭찬인지 아실 거에요) 요즘 잘하는 밴드들이 다들 그렇듯 잘 찍은 영상도 남겨 놓았는데요, 우선 ‘파도’를 한 번 보세요. 아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더불어 장기하. 개인적으로 장기하는 ‘싸구려 커피’를 중심으로 한 세대론이나 ‘복고’ 키워드로 소비되는 게 무척 아쉬울 정도로 음악과 음악 외적인 면 모두에서 뛰어난 감각을 가진 음악가라고 생각하는데요. 라이브 앨범 [하기장기하]를 들으면서 공감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음악가가 지난 몇 년간 관심을 두었던 디제잉, 그리고 서로 연결된 음악이 만드는 ‘몰입’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서 들어보세요. 마침, 유튜브에 풀 앨범이 올라와 있네요.직접 확인해 보시죠. 이 외에도 정말 수많은 좋은 새 앨범들이 쏟아지고 있답니다. 여러분 정말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요.
BOWER [Forked-Time Symphony] (2025.08.04)
첫 곡‘Painter Sky’의 전주를 듣는 순간 결심했습니다. 이 곡과 앨범을 다음주 ‘픽서비스’에 꼭 소개해야겠다고요. BOWER는 고요손 (goyoson), archie, 하시 세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는 팀입니다. (아마 archie는 픽서비스에서도 소개한 [world in delay]로 기억하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 팀이라고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밴드와는 사뭇 다릅니다. 미술과 음악을 오가는 활동 이력을 봐도, 형태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음악을 들어도 그래요. 그럼에도 이번 앨범을 좀 더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건, 수록곡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노스탤지어 때문입니다. 어떤날, 빛과 소금, 노리플라이 아무튼 그런 것들이 잔뜩 녹아 있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의 기쁨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키키를 말할 때 ‘ZenG’ 그 자체인 비주얼을 주로 언급하지만, 전 사실 음악 면에 있어서도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주얼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어떻게든 화려함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 케이팝을 생각하면 놀랍도록 친근하고 수수하다는 점이, 오히려 역으로 매력적입니다. 지난 3월 발표한 ‘I DO ME’에 이어, 새 싱글 ‘DANCING ALONE’도 ‘유기농 레트로’라는 말이 어울리는 곡으로 완성됐습니다. 이토록 직관적인 레트로라니. 춤을 소재로 한 80년대 영화들을 떠올려 보세요. ‘더티 댄싱’, ‘플래시 댄스’ 등등. 해당 영화 주제곡들이 가진 축축한 열기가 2025년 케이팝에서 이토록 산뜻하게 재현됩니다.
보이 그룹 앨범 추천은 오랜만입니다. 4세대 걸 그룹 붐 속에서 5세대를 이르게 언급하며 새로운 시대의 깃발을 뽑으려는 보이 그룹의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실질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죠. 보이지 않는 욕망의 작대기가 난무하는 가운데, 결국 잘 만든 색깔 있는 트랙을 다수 보유한 팀에 눈과 귀가 가는 요즘입니다. EVNNE (이븐)은 최근 새로운 시즌을 전개하고 있는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보이즈플래닛’ 전 시즌 출신의 파생그룹으로, 저는 데뷔작 [Target: ME]를 두고 ‘케이팝 집단지성이 만든 A+ 과제’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이번 앨범도 비슷한 인상입니다. 하우스 리듬과 떼창이 매력적인 수록곡 ‘Mako’를 권합니다. 가끔 익숙한 맛이 그리울 때도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