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무척 좋아하지만, 영화관에서 연달아 두 번 보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많기도 하고, 영화관과 공연장 가운데 고르라면 역시 자연스럽게 공연장으로 발걸음이 향하게 되니까요. 그런 저를 올해 처음으로 두 번 영화관으로 이끈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입니다. 요즘 좋아하는 분들 정말 많더라고요. 처음 동네에서 보고 나서 마지막 자동차 추격신을 용아맥 중앙에서 꼭 다시 봐야겠다 싶어서, 지난주 기어코 해내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아이맥스로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추격전 내내 울렁거리는 속과 입을 틀어막고 스크린 보느라 참 행복했네요.
그리고 혹시, 영화를 보신 분 중에서 엔딩 크레딧까지 앉아 계신 분들 많을까요? 너무 유명한 곡이고 소재라 이미 아는 분들이 많겠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또 다른 주인공은 길 스콧 헤론(Gilbert Scott-Heron)입니다. 소울과 혁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인물이죠. 극 중 ‘프렌치 75’가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외치는 암호 ‘Green Acres, Beverly Hillbillies, and Hooterville Junction. Will no longer be so damned relevant’도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의 가사입니다. 1971년 곡으로, 당시 대중매체의 중심으로 서서히 떠오르던 TV가 사람들의 현실 인식을 화면에 비친 대상에 대한 소비와 도피로 바꿔 버리는 현상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죠. 재미있죠.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 전과 다른 매체로 우리는 여전히 같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튼 영화관에서 내려가기 전에 꼭 한 번 보시길 권해요. 전 두 번째 보니까 더 좋더라고요. 가수 디종(Dijon)이 조연으로 등장하고, 주연 배우 체이스 인피니티(Chase Infiniti)가 케이팝 커버 댄스 그룹 멤버였다는 점도 음악 좋아하는 분이라면 알아두시면 좋을 정보입니다.
이번 주에는 여러분을 직접 만나 뵐 기회가 많아요. 카페 침묵, 서울레코드페어, 부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전자양 [경주] (2025.10.18)
얼마 전 라이브 클럽 ‘극락’에서 열렸던 전자양의 단독 공연에서 처음 공개된 이 곡을 듣고 느꼈습니다. ‘이 곡이 안 되면 나와 대한민국 둘 중 하나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오는 12월 발매될 정규 앨범의 선공개 곡 ‘경주’에는 밴드 전자양의 지난 시간이 모조리 압축되어 있습니다. 1인으로 시작해 4인조 밴드가 된 지금, 점점 광기가 차오르고 있는 전자양의 라이브, 앞만 보며 뛰다 보니 어느새 하나씩 사라진 친구들, 다들 ‘밴드 만세’를 외치지만 밴드로 사는 게 얼마나 고단한지 몸으로 느껴온 사람의 회한, 그럼에도 차마 놓을 수 없는 너와 나, 기타와 북. 고작 4분으로 이 모든 감정이 흐르다니요. 그 이야기 그대로를 담은 가슴 찡한 뮤직비디오도 놓치지 마세요.
최근 ‘요즘 음악 잘 모르겠다’고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그냥 느껴’라고 말하는 편입니다. 아마 그들에게 가장 ‘모르겠다’는 감각으로 다가가는 이들 가운데 Balming Tiger나 yaeji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wo ai ni’는 그런 친구들에게 맞춤으로 추천해 주기 딱 좋은 노래입니다. Balming Tiger와 yaeji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부분만 모아서 ‘사랑해’란 말을 여러 언어로 여러 번 덧칠하는 이 노래야말로 이들의 음악이 어떤 동력으로 움직이고 지금 왜 사랑받고 있는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이어지는‘break it even’을 듣고 또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다고 해도 말이죠.
JINBO의 [Afterwork]와 DEEZ의 [Get Real]이 한꺼번에 등장했던 2010년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던록과 밴드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음악신에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게 다가오고 있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예감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프로듀서로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한국 R&B 신은 척박한 토양을 생각하면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멋진 작품을 계속 내놓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JINBO는 한국 대중음악과 그루브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가장 앞서 그 길을 이끌어 온 인물입니다. 그런 JINBO 음악의 정수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마치 주파수를 돌리는 것처럼 편히 들을 수 있는 앨범입니다. 어떤 주파수에서도 내공과 느낌 좋은 곡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우선 ‘Times Of Our Lives’부터 ‘느껴’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