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동안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름부터 준비한 가족 여행이었는데요, 심지어 패키지였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이 유럽으로 공부하러 간 미대 유학생 같다고 놀림 받긴 했는데요!) 아, 패키지여행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비교적 야행성인 저는 매일 아침 7시 반 ~ 8시 사이 호텔 로비에 반드시 집합해야 하는 스케줄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패키지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면 저녁쯤 자연스럽게 녹초가 되기 때문에 감히 늦게 잠들 수가 없어요. 별로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니, 못 나갑니다. 호텔에 9시쯤 떨어지면 자동으로 씻고, 10시쯤 잠들어서, 6시에 조식 챙겨 먹으러 내려오게 되더라고요. 평소에 아침 안 먹는 분들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조식을 먹지 않으면 오전 중 소모되는 체력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만 합니다. 안 그러면 고객님 오전 관광 코스 자동탈락이세요.
이렇게 쓰고 있으니 무시무시한 극기 훈련을 다녀온 것만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우선 이럴 줄 알았기 때문에 이번 휴가는 머리 대신 몸만 쓰는 시간으로 삼겠다고 처음부터 다짐하고 있었거든요. 머리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극한으로 줄이니 몸도 견딜 만하더라고요? 하루에 2만 보 뭐 까짓거. 실제로 문자나 이메일도 거의 받지 않았고, 정말 급한 일을 제외하면 노트북도 열지 않았습니다. (가져가긴 했습니다. 어떤 급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빌어먹을 프리랜서!) 사실 그 ‘급한 일’ 가운데 ‘픽서비스’ 발송도 있었습니다. 레터 운영을 도와주고 있는 2호에 정상 발송 가능하다며 호언장담하고 떠났지만 웬걸, 동유럽의 인터넷은 제 의지 같지 않더라고요. 이미지 하나 다운 받는 데 5분씩 걸리는 노트북을 두고 저는 그만 빠르게 GG를 치고 말았습니다. 나약하다 동유럽 인터넷, 나약하다 나 자신.
대신 한 주 동안 여러분의 마음이 가장 평화로울 금요일 저녁, 여행 중 들었던 음악을 몇 곡 보내 드립니다. 동유럽도 마침 늦가을을 맞이하고 있어 지금 한국에서 듣기에도 그럴싸한 리스트가 되었네요. 남은 사진과 이야기는 제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종종 올라올 것 같습니다. 무사히 귀국과 업무 복귀도 마무리했고 잘 비우고 왔으니, 이제 연말까지 다시 부지런히 걸어 봐야죠. 다음주 월요일, 정상 발송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가을 깊이 즐기는 주말 되세요!
Elliott Smith [Figure 8] (2000.04.18)
여러 나라를 이동하는 동유럽 패키지여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건 버스 안이었습니다. 최대한 비우는 걸 목적으로 간 지라 음악도 책도 딱히 의식하지 않고 몸만 덜렁 간 저의 입에서 자꾸만 멜로디 하나가 맴돌았습니다. ‘But I better be quiet now, I'm tired of wasting my breath’. 명성에 비해 Elliott Smith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느 계절, 어느 온도와 습도에 박제되어 있던 기억이 자꾸만 그를 소환한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평생 들은 시간보다 더 오래 Elliott Smith를 들은 여행이었습니다. 발 아래로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다양한 나라의 가을 낙엽 소리와 함께요.
いろんな国を移動する東欧のパッケージ旅行で一番多くの時間を過ごすことになったのはバスの中でした。 できるだけ空けることを目的に行ったので、音楽も本も特に意識せず、体だけガタガタした私の口から、しきりにメロディー一つがぐるぐる回っていました。 ‘But I better be quiet now, I'm tired of wasting my breath’。 名声に比べてElliott Smithをそこまで好きな方ではありませんが、ある季節、ある温度と湿度に剥製されていた記憶がしきりに彼を召還した時間でした。 おかげさまで一生聞いた時間よりもっと長く Elliott Smithを聞いた旅行でした。 足の下にかさかさと音を立てながら壊れる様々な国の秋の落ち葉の音とともにです。
Sade [Love Deluxe] (1992.10.26)
얼마 전 한 방송에서 Sade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Smooth Operator’ 같은 몇몇 히트곡으로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 리스트에만 남기에는 너무나 우아하고 멋진 보컬이라고 늘 생각해 왔거든요. 개인적으로 다시 태어나 목소리를 고를 수 있다면 Sade나 Lauryn Hill 같은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수십 년째 여전합니다. 푹 익은 무화과처럼 무르익은 유럽의 가을 풍경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Kiss Of Life’가요. 덕분에 오랜만에 [Love Deluxe] 앨범을 진득하게 들었습니다. 아, 정말 좋은 앨범이에요.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반가운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새 라이브 앨범 [5202] 발매를 앞둔 사월 씨였어요. 사월 씨와는 온스테이지 촬영을 인연으로 꽤 긴 시간 느슨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새 앨범이 발매될 때마다 소개 글을 맡겨 주시기도 하고, 아주 종종 따뜻한 식사나 차를 나누면서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요. 그렇게 접점이 생길 때마다 사월 씨는 늘 무언가를 했거나, 하거나, 할 예정이었습니다. 한국의 포크계 최고의 허슬러. [5202]는 지난 4월, 사월 씨의 브랜드 공연인 ‘사월쇼’에서 선보인 앨범 [수잔] 10주년 기념 공연의 실황 녹음입니다. 픽서비스 첫 호에서 ‘각자의 수잔’을 이야기하며 소개한 기억도 나는데요, 그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라 뭉클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수잔]을 처음 듣던 날, 공연을 보던 날의 기억이 여행의 풍경과 겹치며 또 다른 추억의 모양을 갖췄습니다. 그 조각 가운데, 오늘은 ‘아름다워’를 나누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