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영훈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그렇듯이 한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인데요. 오디션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피로를 말하는 이들이 많고 저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지만, 가끔 이런 환기의 순간이 올 때면 ‘그래도…’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음악가들도 마찬가지겠죠. 싱글은 2022년 ‘오늘의 안녕’, 정규작은 2015년 [내가 부른 그림 2] 이후 소식이 없는 그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냥 다 제 욕심이라고 해도요. 이영훈의 노래 중에선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덕에 명성을 얻은 ‘일종의 고백’이 가장 유명한데요, 같은 앨범에서 조원선과 함께 호흡을 맞춘 ‘무얼 기다리나’도 이 계절에 참 좋습니다. 제 안의 가을 낙엽 같은 ‘버석 x 버석’ 듀오에요.
오늘부터 날이 많이 추워졌죠. 여러모로 슬슬 겨울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네요. 마침 이번 주 추천 앨범들 모두 긴긴밤 친구가 되어줄 만한 듬직한 정규 앨범들입니다.
루시드폴 [또 다른 곳] (2025.11.07)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이름일지도 모르겠지만, 저에게 루시드폴은 큰 멈춤 없이 정말이지 ‘자기 속도’로 ‘자기 음악’을 해나가고 있는 음악가입니다. 2, 3년 꾸준한 간격으로 발표하고 있는 정규 앨범도 그렇고요, 그게 앰비언트든 MPB든 계속 쌓여가며 결국 모조리 루시드폴의 음악이 되어 버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3년 만에 발표한 [또 다른 곳]은 아마 최근작 가운데 그를 추억으로 기억하는 분들과 현재진행형으로 즐기는 분들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앨범 아닐까 싶습니다. 평생이라도 이렇게 음악해 줄 것처럼 든든합니다. 이국의 서늘한 바람이 코끝에 스치는 ‘등대지기’부터 추천해 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느낍니다. 내가 화 나는 만큼 세상을 향해 함께 화내주는 어른이 얼마나 소중한지를요. 아마 자우림과 함께 사춘기를 보낸 분들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더 잘 아실 테죠. 그런 자우림이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앨범 내내 분통을 터뜨려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누군가는 불편하려나요? 자우림과 함께 자라온 사람들에게는 쾌재를 부를 일뿐입니다. 특히 자우림의 라이브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 반길 요소가 많은데요. ‘카르마 KARMA’ 같은 곡, 얼른 공연장에서 듣고 싶지 않은가요.
선미가 이제야 첫 정규 앨범을 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벌써 한 5장은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앨범을 재생합니다. 13곡이 꽉 차 있습니다. 괴기스러우면서도 고혹적인 선미 특유의 분위기를 잘 녹여낸 인트로 트랙 ‘MAID’부터 기대를 높이는 앨범은 슈게이즈로 달려가는 마지막 곡 ‘긴긴밤’까지 선미를 오래 지켜봐 온 이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줍니다. 사람 이름이나 밴드명에 장르를 붙여 만드는 흔한 클리셰를 가능한 피하고 싶은 저 같은 사람에게도 ‘선미팝’을 향해 가는 길을 쭉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합니다. 이제 정말, 보이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