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결산 시즌입니다. 이것저것 잘 체크하고 계신가요? 저도 예전에는 각종 매체에서 나오는 연말 리스트 차곡차곡 모아서 좋아하는 앨범, 놓친 앨범 체크하고 리스트 업 해두는 걸 연말 루틴으로 삼았던 때가 있었는데요, 요즘은 제 리스트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허덕거리는 일상입니다. (음악 많이 들을 줄 알고 시작한 일인데, 의외로 음악을 못 듣고 공연을 못 가는 일이 많다니!) 그래도 아직 조금은 취미 영역으로 남겨둔 해외 음악 리스트는 부지런히 북마크 해두고 있어요. ‘픽서비스’는 한국 대중음악 큐레이션 뉴스레터지만, 언젠가는 특별편으로 최신 해외 음악도 살짜쿵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리스트를 발견하시거나 어딘가 여러분의 리스트를 올리게 되면 픽서비스도 태그해 주세요! 같은 것도 나눠보면 재미있잖아요. ‘픽서비스’ 방식의 – 소박하지만 느낌 있는 연말 결산도 나눠볼 수 있게 준비해 보겠습니다.
주말에 있었던 재미공작소의 ‘케이팝 연말결산’ 행사가 끝나고 레터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역시 보이지 않아도 다정한 우주의 기운은 늘 함께! 작고 귀여운 뉴스테러지만 성실하고 꾸준하게 담아 더 먼 곳까지 가볼게요. 그럼, 이번 주도 음악으로 같이 놀아요.
전자양 [합주와 생활] (2025.12.20)
제가 이 앨범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저를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겁니다. 약점이라고는 밴드 신이 빈약한 한국이라는 국적뿐인 밴드 전자양의 무려 8년 만의 정규 앨범 [합주와 생활]입니다. 전작 [던전]으로 전자양의 상상력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멀고 견고한 세계까지 여행을 떠났던 이들은, 이제 뮤지션으로 활동한 기간만큼 무거워진 악기와 일상의 피로를 어깨에 메고 터벅터벅 연습실로 향합니다. 그러나 [합주와 생활]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기가 넘칩니다. 어제 막 결성한 밴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요. 월요일 퇴근 후 자발적으로 자기 계발 학원을 찾거나 취미 스포츠를 즐기러 떠나는 직장인의 광기에 가깝달까요. ‘빌 머레이’같은 곡을 들으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마지막 곡 ‘생수’를 들으며 혼자 소파와 현관에 쓰러져 우는 밤이 더 많다고 해도요.
여기 또 한 팀. 힘과 연륜이 동시에 넘치는 밴드가 있습니다. 올해로 결성 13년 차를 맞이한 솔루션스의 EP [틈]입니다. 적지 않은 9곡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EP라는 타이틀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한 글자로 통일한 트랙 리스트도, 지난해 발표한 3집 [N/A]의 타이틀곡 'N/A'를 재조립한 마지막 곡 ‘나’도 그 모든 추측의 근거가 됩니다. [우화]는 앨범 [N/A]를 통해 새 몸을 갈아 끼운 솔루션스 안에서 지난 1년간 일어난 폭발을 부지런히 담은 거친 퍼즐입니다. 얼핏 [N/A]의 프롤로그처럼 들리기도 하는 앨범을 뒤로 하고 솔루션스는 또 어디로 날아가게 될까요? 강렬한 폭발의 흔적을 단 하나만 빠르게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문’을 추천합니다. 아 밴드가 지금 얼마나 칼을 갈고 있는지 바로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제 플레이어보다는 프로듀서로, 나아가 보이 그룹 보이넥스트도어의 ‘아버지’라는 인상이 강해졌지만, 지코는 지금도 그때도 여전히 범용성 좋은 바이브를 갖춘 래퍼이자 싱어송라이터입니다. 밴드 YOASOBI의 리라스(Lilas)와 함께한 이 곡을 들어 보세요. 지역도 장르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가사, 리듬, 멜로디로 어우러지는 모습 그 어디에도 어색함이나 어긋남이 없습니다. 지코와 YOASOBI를 이루는 핵심 요소가 사이좋게 50%씩 공유된 곡에 한국어, 영어, 일어가 물감을 묻힌 나비처럼 자유롭게 낙서를 남깁니다. 그 어떤 것도 벽이 될 수 없는 한국 대중음악의 2025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