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캘린더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늘이 12월의 마지막 날이라니. 이 정도 살았으면 매년 놀라기 질릴 만도 한데, 새삼스럽고 촌스럽게 올해도 분초마다 놀라며 12월 31일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 작은 뉴스레터를 받아보시는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보내고 계실지도 궁금하네요. 저요? 전 타고나길 오늘만 사는 타입이라 사실 연말연시나 특별한 날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진 않는 편인데요, 올해는 조금 다르긴 하네요. 삶의 유한함, 잘 이별하는 방법, 변한 것과 그대로인 것, 생의 우선순위. 지금 키보드를 치고 있는 제 머릿속을 채운 건 이런 키워드들입니다. 물론 다른 한쪽에서는 빨리 이 레터를 마무리해 발송하고, 미팅을 마치고, 친구와 가볍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집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침대와 책상을 치우며 MBC ‘가요대제전’과 보신각 타종 중계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요.
오늘 레터는 평소와 달리 올해가 가기 전 꼭 한번 다시 듣고 싶은 세 곡의 노래를 픽 해봤습니다. 모두 올해 픽한 앨범 수록곡들이기도 합니다. 돈 얘기, 대박 얘기하는 새해 첫 곡도 좋지만, 전 한 해를 보내며 지난 1년을 특별하게 회고할 수 있는 노래를 모아 듣는 게 기분 좋더라고요. 저도 아마 오늘 밤은 이 곡들과 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한 해 마무리 되시길 바랍니다. 덕분에 올 한 해 든든했습니다. 내년에도 픽서비스, 잘 부탁드려요.
정우 ‘철의 삶’ ([철의 삶] (2025.08.21))
올해 제일 많이 들은 곡도 좋지만, 제일 많이 흥얼거린 곡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때와 장소 상관없이 머리와 입속에 자주 맴도는 곡이라면 멜로디가 어떠니, 조성이 어떠니 뜯어 분석한 음악보다 훨씬 제 마음을 저격한 곡일 거라고 확신하거든요. 올해의 우승자는, 정우의 ‘철의 삶’입니다. 오래전부터 공연에서 사랑받았던 곡이니만큼 노래의 흡인력이나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요, 무엇보다 ‘나는 철의 삶, 철의 여인’으로 시작하는 후렴구 멜로디와 가사가 쫀득하게 붙는 맛이 올해 어떤 곡보다 탁월했습니다. 반도네온 리듬에 맞춰 지금이라도 박수를 치고 상체를 흔들고 운명을 비웃으며 신나게 올해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천 번을 두드리는 삶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니까요.
살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나 행동으로 진짜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많죠. 얼마 전 누군가 저의 ‘개인적인 올해의 앨범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반사적으로 [NONG]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당연히 좋아하는 앨범이지만, 제가 이 정도로 좋아하는지는 저도 몰랐어요. 이 앨범은 들으면 들을수록 섬세하고 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진지한 음악적 탐구와 한 사람의 삶이 고운 입자가 되어 촘촘히 채운 앨범의 결이 무엇보다 좋습니다. 부드럽고 묵직합니다. ‘골짜기’는 그런 앨범의 높은 밀도를 대표하는 곡입니다. 심지어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와 여유로운 무드로요. 원래 진짜 고수는 어려운 걸 쉽게 하는 사람인 거 아시죠? 딱 그런 곡입니다.
[Ruby]의 훌륭함에 대해서는 이미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서 이야기한 것 같아 여기에서는 잠시 생략하겠습니다. FKJ와 함께한 인트로부터 아무 데도 버릴 곳 없는 [Ruby]는 들을 때마다 차애 곡이 바뀌는 앨범이기도 한데요, 처음 듣던 순간부터 최애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곡이 있었으니, 마지막 곡 ‘twin’입니다. [Ruby]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개인적인 색채가 짙어지는데요, ‘twin’은 그런 흐름 속에서 앨범의 가장 여린 속살 같은 노래입니다. 어쿠스틱 기타와 어린 시절의 일기 같은 가사를 반복해 듣고 있으면 늘, 제니가 쌍둥이 같던 친구와 함께 Ashanti를 듣던 어딘가의 바닷가가 저절로 눈 앞에 펼쳐집니다. 연말에 유독 자주 들으며 마음을 다독인 곡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