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아마 오늘 이 감정을 느낀 분들이 유독 많았을 겁니다. 오늘 각종 ‘시작’이 참 많은 날이더라고요. 개학과 개강도 있고, 취업이나 이직하신 분들은 오늘이 첫 출근인 경우도 많고요. 새해 첫날에 한 번, 음력 설에 한 번, 오늘 한 번. 한 해가 시작된 지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도대체 시작만 몇 번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주어지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잖아요? 이왕 주어진 기회, 모르는 척하고 한 번 더 써보기로 하죠. 저도 오늘이 끝나기 전에 ‘오늘부터 1일’할 만한 아이템 하나 찾아보려고요.
저의 오랜 친구 영화감독 박현진은 동료 여성 감독 세 사람과 함께 ‘프리-프리(Free-Pre)’라는 뉴스레터를 런칭했습니다. 창작자의 솔직한 심정을 담은 에세이 ‘영화가 될지도 몰라’에서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는 ‘이달의 잔고’까지 다양한 콘텐츠들이 예고되어 있네요. 예상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호흡이 긴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소모되며, 다시 살아가게 되는지를 살펴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리워드 종류에 따라 레터를 운영하는 감독들과 직접 만나거나, 시사회에 초대될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니 흥미에 따라 잘 살펴보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픽의 8할은 타이틀 곡 ‘GO’ 때문입니다. 저는 물론 온 한국, 아니 나아가 전 세계가 주목한 4년 만의 컴백을 100% 만족시킬 만한 곡은 아마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음악가를 모셔 와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거예요. 그리고 ‘GO’는 그 어려운 수행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기적에 가까운 곡입니다. 그건 아마 망설임 없는 댐핑으로 고막과 심장을 치고 나가는 사운드 때문일 수도, 콜드플레이(Coldplay)의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에서 헨리 월터(Henry Walter), 써쿳(Cirkut)에 이르는 그래미가 부럽지 않은 작곡가 라인업 때문일 수도 있겠죠. 무엇보다 지난 4년 동안 무서운 기세로 성장한 네 멤버의 존재감 덕분이 클 테고요. 무서운 속도감과 밀도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기분 좋은 묵직함입니다.
볕이 따스해지고, 바람이 점점 누그러지는 날들입니다. 이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산들바람 같은 노래 하나에 마음을 쉽게 빼앗기게 되는데요, 그 흔들림에 예빛의 ‘Traveler’를 살짝 권해 봅니다. 소박하고 포근한 예빛의 음악 가운데에도 특히 맑은 기운이 도드라지는 곡이라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봄바람이 새삼 반가운 요즘 같은 계절에 정말 잘 어울려요. 크레딧을 살펴보니 반가운 이름, 프로듀서 구름이 있습니다. 여성 솔로 아티스트와의 호흡이 유독 좋은 그이니만큼 믿고 들어도 좋죠.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허세과의 이름도 반갑네요. 어디 하나 거슬리는 데 없는, 그저 기분 좋은 어쿠스틱 팝입니다.
힙합 좋아하는 분들 가운데 작년 힙합신이 유독 재미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았죠.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어요. 신선한 플레이어도 다수 등장했고, 개인적으로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아닌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큰물과 만나 자연스럽게 섞여 드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즐거웠습니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랩&힙합 부문’을 휩쓴 식케이 (Sik-K)와 릴 모쉬핏(Lil Moshpit)의 ‘K-FLIP’이 대표적이었고, 래퍼 염따와 밴드 실리카겔의 만남도 의외의 포인트였죠. 빅나티(BIG Naughty)의 [코발트와 네이비 그 사이]도 그 맥락에서 더없이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앨범입니다. ‘어떤 음악을 할지 방향을 잃었던 시기 힘이 되어준 인디 음악가’를 잔칫날처럼 초대한 라인업을 보세요. 다양한 조합을 상상하고 직접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가 있습니다. 우선 선우정아와의 조합부터 들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