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이발관의 ‘생일 기분’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생일을 떠올리면 신나기보다 어딘가 기분이 좀 껄쩍지근해지는 사람들을 위한 주제곡 같은 노래죠. 한때는 이 노래의 기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솔직히 그 정도로 삐딱하지는 않아요. (이 나이에 그건 좀 심하잖아요.) 그래도 타고난 본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노래에 등장하는 스무 살이 한 번 더 돌아도 세상은 여전히 제 속도와 풍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틀 전인 3월 16일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김윤하의, 하루 전인 3월 17일은 이 뉴스레터 ‘픽서비스’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생일 부근이 되면 (1) 기분이 은은하게 나빠지거나 (2) 알 수 없는 사건·사고가 터지던 인생! 올해도 그 저주를 피해 가지 못하며 수요일에 레터가 발송되는 문제적 상황을 만들고 말았는데요. 이렇게 우당탕 뉴스레터도 기다려주신 분들이 있으셨겠죠? 그분들께 첫 번째 감사를, 문단의 첫 줄을 읽으며 이런저런 기념일을 마음으로 축하해주셨을 분들께 두 번째 감사를 전합니다. 꽤 투덜거렸지만, 저도 주위 노란 구슬처럼 모아 둔 좋은 사람들 덕분에 따뜻한 날을 보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념일이란 한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모든 공기를 모으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YENA (최예나) [LOVE CATCHER] (2026.03.11)
‘네모네모’로 감을 잡은 이후, 서브컬쳐를 향한 YENA의 행보는 거침이 없습니다. 어떤 방향이건 케이팝이 가진 ‘한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파해 나가는 아이콘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눈길이 갈 수밖에 없죠. (아이즈원 때도 이미 눈이 갔지만요. ‘Panorama’의 이 짧고 굵은 킬링 파트, 다들 기억 하시나요?) YENA의 새 EP [LOVE CATCHER]는 그렇게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YENA의 서브컬쳐 잠재력을 한군데 모아 원기옥처럼 발사하는 앨범입니다. 이정현에서 티아라, 바나나걸까지 ‘케이팝 키치’로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아이콘을 소환하는 ‘캐치 캐치’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한국인이거나 한국 음악을 오래 좋아해 온 이라면, 앨범에 수록된 5곡을 들으며 ‘자신만의 가요계 황금기’를 분명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편의상 포크로 구분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천용성은 ‘대중가요 음악가’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네, ‘대중가요’요. 그의 이름을 많은 이들에게 알린 ‘대설주의보’를 들으며 우리가 떠올린 건 장르 색이 뚜렷한 작품들은 분명 아니었죠. 혹은 그런 음악가가 떠올라도 그가 남긴 음악들 가운데 대중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진 곡들이 대상이었고요.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가운데 가장 사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앨범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여전히 다정하고 가까운 ‘대중 가요적’ 외투 속에 냉소적이고 예민하게 세상을 느끼고 살아가는 천용성의 웅크린 몸이 투명하게 비칩니다. 천용성은 좋은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말 좋은 이야기꾼이거든요. 그와 마음을 공명한 작가 김달님의 소개 글이 참 좋습니다. 마지막 곡 ‘산’에 붙은 글을 보다가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기도 했어요.
요즘 두 눈을 비비게 만드는 이들의 귀환이 참 많습니다. 재결합이 세계적인 추세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도 유행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거겠죠. 그런 유행의 흐름에, 유행과 가장 먼 곳에 있는 이들의 이름을 추가해 봅니다. 프로듀서 제이플로우(Jflow)와 보컬 셉(Sep)으로 구성된 2인조 얼터너티브 R&B 그룹 ‘히피는 집시였다’가 무려 6년 만에 새 노래를 내놓았습니다. 2020년 발표한 앨범 [0] 이후 처음으로 올라온 공식 계정 포스팅을 보며 뭉클한 마음이 들었던 게 저뿐만은 아니겠죠. 오랜만인데도 듣는 이의 영혼을 울리는 시적인 음악은 여전합니다. 올해 앨범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힙노시스테라피를 병행하고 있는 프로듀서 제이플로우의 건강만을 기도합니다. ‘오랜만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라는 인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