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뉴스레터를 보내고 겨우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저에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우선 저 말고도 정말 많은 분이 참여하셨을 제1회 ‘영희 페스티벌’과 올해로 여덟 살이 된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이 지나갔습니다. 사적으로는 끝나지 않는 기침감기 후유증에 고통도 좀 받고, 속세에서 탈출한 것처럼 석 달 만에 머리도 잘랐어요.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지나간 순간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메모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던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바르고 성실하게 사는 걸까요. 저는 눈코 뜰 새 없이 날아가는 하루를 묘기처럼 타고 비틀거리다 씻고 침대에 무사히 눕기만 해도 오늘을 승리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좋았던 순간들이 참 많아서,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간단하게라도 어떻게든 이야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참, 각 페스티벌과 관련된 라이브 영상은 픽서비스에도 조금씩 업로드가 되고 있습니다. 픽서비스 2호(aka. 유슬언니)가 열심히 촬영해 주고 있어요.
열흘을 돌아 다시 월요일 정기 뉴스레터 복귀를 꿈 꿔보는 픽서비스입니다. 사실 그 ‘겨우 열흘’ 동안 너무 많은 앨범이 나와 같이 이야기할 수 없는 게 못내 답답했거든요. 심지어 최근 제가 라이너 노트를 담당한 앨범이 (작성한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어쩌다 보니) 거의 동시에 발매되게 되어서 그 이야기를 충분히 할 여유가 없는 것도 좀 아쉽네요. 우선 WORK를 꼼꼼히 봐주시고, 또 다른 식으로 한 번 풀어볼게요. 그럼, 우선 픽서비스의 할 일부터 해보겠습니다. 애써 만든 새로운 음악을 (나름) 바르고, 성실하고, 깨끗하게 골라 전달하는 일이요.
녹이녹 [내 옷은 냄새가 없다.] (2026.06.16)
한국 포스트록을 좋아합니다. 모든 장르가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포스트록은 한국산이 가장 좋습니다. 아무 말 없이 갖은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해야 하는 포스트록만의 고유한 형식 때문일까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 같은 기분이 가장 중요하다면, 역시 같은 땅에서 같은 생각과 고민을 한 이들의 것이 가깝게 느껴지는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국 포스트록의 계승자’ 역할을 자처하는 밴드 녹이녹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첫 정규 앨범 [내 옷은 냄새가 없다]는 첫 곡 ‘여름방학’부터 한국 포스트록을 잠깐이라도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그리울 수밖에 없는 정서를 끌어안고 힘차게 전진합니다. ‘포스트록은 곡 길이가 길다’는 상식을 깨고 모든 곡이 3분대에서 끝나는 산뜻함도 좋고요. 참, 앨범 청취 전후로 ‘녹이녹 한국 포스트락 메들리’ 한 번 복습하시면 더 재미있게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혹시 아직도 오티스림을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로 기억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 앨범을 듣기 전에 그 기억을 억지로라도 잊는 걸 추천합니다. 오티스림의 두 번째 정규 앨범 [사생아]는, 그의 지난 5년여 간의 음악 여정을 전부 지워버리겠다는 기세로 거친 새출발을 선언하는 앨범입니다. 그를 ‘변신’하게 만든 결정적 키워드는 ‘Funk’입니다.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리며 앨범 내내 요동치는 오티스림을 보면, 그동안 이 끼를 도대체 어떻게 참았나 싶습니다. 그저 맛만 내는 ‘Funky’가 아닌 ‘Funk’한 앨범이라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네요. 터질 듯한 에너지에 한국적 ‘뽕’까지 더한 ‘꾀죄죄’부터 추천하고요, 퍼포먼스와 함께 선공개했던 ‘(Let me go) Nana’를 같이 보시는 것도 권합니다. 아마 오티스림을 안다고 생각했던 분일수록 더 놀라움이 클 거예요.
레트로 감성으로 만든 인디 판 걸 그룹이 처음은 아닙니다. 몇 해 전 1세대 케이팝 걸 그룹을 모티브로 활동했던 치스비치를 다들 기억하실 거예요. 토마토맛도 그 연장선에서 성기게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21세기 초를 살아온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시부야계’와 ‘Y2K’를 모티브로 하는 점도 그렇고, 이미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던 쿠인(quinn_)과 수은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점도 그렇죠. 하지만 이 그룹을 단지 그런 ‘컨셉 그룹’으로만 언급하고 지나가기엔 너무 아쉽습니다. 타이틀 곡 ‘콜렉트콜 개러지’만 들어봐도 그래요. 이 곡을 듣고 떠올릴 각자의 추억이 전부 미묘하게 다를 거라는데 지난 60개의 픽서비스를 걸겠습니다. ‘시대 감성’이라고 쉽게 뭉뚱그려버리는 무지갯빛 ‘조온습’이 앨범 내내 반짝입니다.